2011년 10월 1일 토요일

[닥치고 정치 - 김어준] 을 읽고


요새 팟캐스트 다운로드 순위를 보면, 1위가 딴지라디오-나는 꼼수다 3위가 김어준의 뉴욕타임스(Video) 6위가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 7위가 김어준의 뉴욕타임스(Audio).  10위 안에 4개가 김어준이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나는 꼼수다는 무려 오디오부문 팟캐스트 다운로드 세계 1위다. 그런 김어준이 책을 냈다. 닥치고 정치.    


예약 구매로 샀더니, 초판 한정 선물인지 김어준 싸인이 되어있다. ㅋㅋ


이 책은, 원래는 조국 교수가 쓴 진보집권 플랜을 보고 조국 교수를 후방 지원하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였으나, 조국 교수 인기가 생각보다 빨리 사그라들자 방향을 바꿔서 지금 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하는지 지승호의 인터뷰 형식을 빌려 김어준의 화법으로 역설한 책이다.

사실 조국 교수 관련된 내용은 맨 앞에 30페이지뿐. 나머지 300 페이지는 정말 울트라 스펙터클 정치 서스펜스 쇼다. 내용은 거의 나는 꼼수다에서 설명된 내용이지만, 그래도 다시한번 김어준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일단 1장에서 자기가 정의하는 좌/우의 정의를 설명한다.
2장에서는 1장에 설명한 설명을 바탕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비리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BBK, 청계재단을 짚고 넘어간다.
3장에서는 삼성을 깐다. 삼성의 순환출자를 이용한 상속비리, 검찰을 지배하는 삼성의 꼼꼼한 관리, 그리고 삼성에 어떻게 대항해야 하는가에 대해 설명한다.
4장에서는 심상정, 이정희, 노회찬, 민주당, 민주 노동당, 진보신당 등 진보진영에 대해 살펴본다.
5장에서는 박근혜를 중심으로 한나라당을 들여다 보고, 마지막으로 6장에서 문재인을 중심으로, 다음 대선을 전망하며 책이 끝난다.

이 책을 읽으며 2가지 점에서 놀랐다.

일단 김어준의 통찰이 놀랍다. 50 페이지에 걸쳐 옛날 유인원 시절을 상상해가며 진화론을 끌어들여 좌/우를 구분하는 그의 논리는 이거다. 좌/우는 이념으로 갈리는 게 아니고, 그냥 타고 나는 거다. 지금 이념을 가지고, 논리를 가지고 좌/우를 설명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거다. 또, 오로지 이 50페이지에 걸친 자신만의 논리로 나머지 300페이지를 설명하기 때문에, 기존 언론의 프레임에서 완전히 독립한다. 10년 전 딴지일보를 설립할 때도, 이번에 나는 꼼수다로 성공을 거둘 때도, 언제나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성공한 그 저력이 이 책에서 보인다.

게다가, 이 김어준만의 프레임이 매우 설득력이 있다. 논리로 좌/우를 설명하는 것도 의미가 없고, 선거를 설명하는 것도 역시 의미가 없다. 이 세상은 논리가 아니라 정서로 움직이는 거다. 철저히 유권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이 점을 가지고 김대중-노무현-이명박의 시대를 설명하며, 앞으로의 예상을 펼쳐내는데, 거의 다 설명이 그럴싸하다. 논리를 가지고 일단 우리편 좋은 편 상대편 나쁜 편 갈라놓고 시작하는 게 아니고, 정서의 관점에서 상대편이 어떻게 느끼는지, 왜 그렇게 느끼는지. 또 우리편은 어떻게, 그리고 왜 그렇게 느끼는지에 대해 직관적이고도 논리적으로 분석하기 때문에, 그의 통찰력이 꽤나 놀랍다. 실제로 이 책은 지승호와 2011년 5월에 6번에 걸친 인터뷰로 만들어낸 책인데, 홍준표의 한나라당 당선, 오세훈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등등 그 당시 예측한 것들이 거의 다 맞아떨어졌다.

또 하나 놀란 점은 김어준의 깡이 정말로 대단하다는 점이다. 이 책에 익명으로 거론하는 사람 단 한 명도 없다. 전부다 실명으로 거론하고 깔 때는 정말 대차게 깐다. 나름의 팩트와 자기의 추정을 구분해 가면서. 보다보면 속이 후련한 느낌과 이거 김어준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동시에 든다.

결론적으로, 그의 대부분의 의견에 동의한다. 정치는 생활이다. 지금처럼 생활이 힘든 것은 결코 개인만의 잘못이 아니다. 정치를 잘못한 탓이 크다. 지금은, 닥치고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할 상황이 맞다.

더불어, 이 정도의 현상분석력과 용기를 가진 김어준이라는 존재와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딴지일보 서버 해킹도 그렇고 요새 여기저기서 김어준한테 기술 들어가는 거 같은데, 제발 김어준을 내버려 둬라. 나꼼수, 뉴욕타임스, 색다른 상담소는 요새 내 삶의 낙이다. 내 낙을 뺏어가지 말란 말이야. 그리고 김어준의 말대로, 권력이 화내면 쪼잔해 보이자나.

마지막으로, 이 긴 책의 맨 끝 2페이지에 있는 마무리 글에 동의한다.


 당신, 정말로 잘 생겼다. 단지 Handsome보다는 Well-Made 쪽에 가깝지만. ㅎㅎ


PS.  이 책에 숨겨놓은 보너스 요소 같은 게 있는데, 왼쪽 페이지에는 아래 사진처럼 닥치고 정치라고 써져있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페이지 번호가 매겨져있다.



근데 300페이지 에는 웃어! 라고 되어있고, 304페이지에는 울어! 라고 찍혀있다. 대충 쫄지 말고 마음껏 감정을 표시하라라는 메세지 인거 같은데, 굳이 300,304페이지에 이걸 찍어놓은 이유가 따로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