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마 5,6살 때쯤이었는데, 내가 반찬투정을 했던 모양이다. 엄마가 벼락같이 화를 내면서 그럴거면 먹지 말라면서, 밥그릇을 뺏어가
버렸다. 사실 엄마가 왜 화났는지 잘 몰랐던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어찌해야 할 지 잘 모르고 있다가
배가 고픈데 밥을 안 주는 엄마에게 결국 울며 불며 다시는 반찬 투정 안 하겠다고 맹세한 뒤에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편식하고 반찬 투정했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나 역시 어릴 때 길들이기 쉬운 아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실 그 이후에도 친척집에서 엄마가 갑자기 쓰러지는 시늉을 하고 이모들이 내가 말
안 들어서 엄마 이제 죽는다고 미안하다고 하라고 했던 약간; 낯 부끄러운 기억들도 나는 걸 보면 우리
엄마는 나 때문에 꽤나 고생한 건 인정해야 할 듯하다.
2. 그래선가
보다. 이렇게 아이와의 기싸움 같은 책을 읽는 건, 내 유전자를
이어 받은 내 아들 역시 쉽게 넘어가진 않으리란 예감을 하고 있기 때문인가 보다. 아마존 자녀교육부문
최장기 베스트라는 글자가 책 앞에 빨간 바탕에 하얀 맑은 고딕체로 써져 있는 걸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마침내 사 들고서는 일주일 만에 다
읽은 것 역시, 나를 닮은 내 아들이 무섭기 때문인 것 같다.
3. 부부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도 그렇고,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도 그렇고 약간은
홈쇼핑에서 충동구매로 산 뱃살 빼기 운동기구 같은 느낌이 있다. 오오 저 운동기구만 있다면 나도 복근에
식스팩이!!! 라고 내 지르지만 매 번 깨닫는 것은 아무리 좋은 운동 기구가 있어도 내가 땀 흘리지
않으면 절대 몸짱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도 그렇다. 사실
아이가 짜증을 낼 때는 아이도 왜 짜증이 났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아이를 잘 관찰해서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 때 그 때 진짜 불만을 풀어줄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되, 잘 안 되도 좌절하지 말고 될 때까지
노력하라. 안 되면 의사를 찾아가라. 라는 어찌 보면 안
읽어도 알 수 있는 내용을 얘기하는데, 뭐 이를 누가 모르나.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될 수 있었던 건 저 뻔한 결론의 허망함을 저자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 안 될 거라는 사실을 저자도 알기 때문에,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하는 부분이 ‘욱하지 말라’라는 거다. 처음에
아무리 대화로 풀라고 노력한들 중간에 아이가 맘대로 안 되어 결국에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순간, 앞에
했던 노력은 아니 한 것보다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지치지 말라는 점이다. 아무리 착한 부모라도 아이의 끝도 없는 요구에 지쳐 항상 “안돼, 지금 말고” “시간 없어” 로
아이와 대화를 원천 차단하게 된다면, 아이를 이해할 기회가 없고 결국 서로를 이해 못 해 끝이 안 나는
기싸움의 굴레에서 모두가 힘들 뿐이다. 아이와의 싸움에서 어른이 그나마 절대적으로 유리한 점 중에 하나는, 아이보다 끈질기다는 점이다. 먼저 지치면 안 된다.
5. 5,6살에 반찬 투정을 하던 나는 어느 샌가부터는 별로 반찬 투정을 하지 않는 착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가끔은 욱해서 혼내기도 했지만, 끝까지 지치지
않고 나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던 엄마의 승리였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갑자기 엄마가 고맙다. 말로 해도 안 듣고 때려도 안 듣고 암튼 그 소악마 같던 녀석을 이렇게까지 키워준 건, 결국 엄마가 날 사랑했기 때문이니까.
6. 이제 내
차례다. 내 아들이 반찬 투정을 할 시기가 머지 않았다. 말로
달래고 가끔 얼르고 혼내고 하더라도 최대한 욱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아이보다는 끈질겨야 하겠다. 가끔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테지만, 결국 잘 되리라. 아이와의 기싸움이 결국 Win-Win으로 끝날 수 있으리라 믿는 건, 나 역시 내 아들을 ‘사랑’으로 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 한 번 덤벼봐라 이 녀석아. 아빠가 사랑으로 받아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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