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일 화요일

[분노하라 - 스테판 에셀]을 읽고.


몇년 전부터 티비에서 우스갯소리로 하는 소리가 있다. 

"저는 불의를 보면 잘 참아요 하하하하" 

옛날에 이런 소리를 티비에서 했으면 어땠을까. 원래 우리나라는 불의를 보면 잘 참지 않는 나라였다. 4/19 의거가 그랬고 광주 민주 항쟁이 그랬고 일제 강점 시대에 독립운동이 그랬다. 허나, 근래에 들어, 특히 광복 이후로,  의로운 행동을 하면 불이익을 받고 제 앞가림에나 열심이었던 사람들이 잘 살게 되는 불합리를 지켜보면서, 점점 불의를 보면 잘 참게 된 거 같다. 

그런 우리들에게, 이 책은 짧게 물어본다. 그렇게 살면 행복하냐? 

레지스탕스 단원으로서, 

1. '모든 시민에게, 그들이 노동을 통해 스스로 살길을 확보할 수 없는 어떤 경우에도 생존 방도를 보장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완벽한 구축'
2. '경제계, 금융계의 대재벌들이 경제 전체를 주도하지 못하게 하는 일까지 포함하는 진정한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 정립'
3. '파시스트 국가들의 모습을 본떠 구축된 전문적 독재에서 놓여난, 일반의 이익을 특정인의 이익보다 확실히 존중할 합리적인 경제조직'
4. '언론의 자유, 언론의 명예,ㅡ 그리고 국가, 금권, 외세로부터 언론의 독립' 
5. '프랑스의 모든 어린이가 가장 발전된 교육의 혜택을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 이상을 이루기 위해 투쟁하고, 현실이 부당하게 흐를 때 분노하며 현실에 참여해온 저자 스테판 에셀은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할 줄 알아야 인생이 행복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현실에 외면한 채 애써 자기 삶에만 집중하고 사회가 망가져가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잊으려 사는 것보다, 현실에 참여해서 내가 사는 세상 전체가 더 좋게 만드는 것이 더 행복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교육에서의 양극화는 심해지고, 대기업-중소기업간 격차는 나날이 늘어가고, 언론은 정부의 시녀역할만 한 채 정부에 쓴소리좀 할라고 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서 겁주기 바쁘고, 소득격차는 늘어가는데 이를 보완할 사회보장제도는 약해지고 있고. 세상 이래서 좋아질 수 있을까? 체념할 필요는 없다. 

스테판 에셀은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 죽을 뻔한 고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적도 있고, 한 평생 살아오면서 적도 많았고, 절망의 순간도 있었고, 어리석은 일을 저지른 적도 있다. 하지만 낙천적이다. 세상은 좋아질 것이라 믿고 있다. 왜? 스테판 에셀이 젊을 때, 나치처럼 학살을 저지르던 암흑의 시대에서 UN에서 인권을 선언하는 세상으로 바뀌지 않았는가?  

분노하고, 현실에 참여해서 바꾸려고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스스로의 삶으로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투표로 참여하고,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힘들게 싸우는 사람들을 응원해줄 수 있을 때, 사회가 바뀐다. 그리고, 아무리 화나더라도 비폭력으로. 폭력은 결국에 가서는 효과가 없다.  

분노하라. 세상이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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