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7일 월요일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 김난도를 읽고.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통제불능의 아이들에게 효과적인 방법중에 하나가 감정놀이다. 아이들에게 화남, 미움, 짜증, 좌절, 실망 등의 카드를 보여주면서 자신들이 느꼈던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사실 왜 자기가 그렇게까지 감정이 폭발했는 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니가 느꼈던 감정은 이것이었단다 라고 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달라진다. 다음 번에 같은 경우가 발생할 경우에도, 아, 지금 내가 화가 났구나 하면서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하게 되고, 좀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최단기간 밀리언셀러 에세이를 썼던 김난도 교수는 바로 이 감정놀이를 잘하는 사람이다. 왜 이렇게 아픈지 힘든지 좌절스러운 청춘들에게 '청춘'이라서 힘든 거란다. 라고 당위를 준 사람이다. 때로는 힘든 상황을 빠져나가는 해법을 알려주는 거보다, 그 힘든 상황에 이름을 붙여주고 당위를 주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한 위로가 되는데, 바로 이 지점을 짚어낸 것이다.
두 번째 책,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역시 다르지 않다. 어려움을 돌파할 해법따위는 없다. 그러니까 견뎌라라는 것이 요지다. 단지 '어른'이면 힘들다라고 다시 한 번 당위를 준다. 누구나 힘들며 힘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활력이 될 것이라 일갈한다.
이런 방법은 사실 내용보다는 말하는 화자가 더 중요하다. 아이가 달라졌어요란 프로그램에서도 아이또래에 누군가가 감정놀이를 지도하면 효과가 없을 것이다. 나를 아껴주고 나를 사랑해주는 어른이 설명을 해주기때문에 효과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이명박대통령이 어른은 원래 힘들다라고 해봐야 감명이 오지 않는다. 평소에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사람이 어른은 원래 힘들다라고 해야 감명이 온다. 기업가로 안철수, 종교계에서 혜민스님, 그리고 여기저기서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했던 김난도 교수이기에 이만큼이나 사회에 공명을 울릴 수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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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중에서는 리셋! 내 인생 부분이 가장 나에게 와 닿았다. 리셋을 누르면 깔끔하지만, 지금까지 작업한 내용을 전부 날려야한다. 보통 작업한 내용이 아까워 리셋을 못 누르는데, 사실 그거 별 거 아니니까 잘 생각해보고 눌러야할 때는 눌르는 것이 좋다고 한다.
나는 올해 3월에 리셋을 한 번 눌렀다. 4년 다녔던 삼성엔지니어링을 관두고 될지 안 될지 모를 벤처에 들어왔다. 관두는 것을 1년을 고민했는데, 마지막 한 달 동안은 정말정말 내적 갈등이 많았다.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모든 회유를 동원해 나를 잡으려고 했다. 원하는 부서, 원하는 직책으로 무조건 옮겨줄테니 한 번 더 도전해보고 관두어도 늦지 않다고.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 내가 나가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다른 부서에서 일해봤는데 적성이 맞을 수도 있고, 1년 더 일하면 돈도 더 세이브하고 나갈 수도 있는 것이고.
그래도 리셋을 눌렀다. 내가 흔들린 이유가 단지 대기업이 싫어서 그런 건지 정말로 이 곳이 나랑 안 맞아서 그런 건지 직접 알아봐야했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이 곳에서 나가고 싶어서 대는 핑계인지 아니면 정말로 내가 하고 싶어서 그런지 알아봐야했다. 대신, 포기해야하는 것을 확실히 받아들였다. 내 예측가능한 커리어,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은 확실히 포기했다. 작업한 내용을 확실히 날렸다. 그래서 내가 흔들린 이유가 진짜 무엇때문인지 곧 알 수 있을 것 같다. 리셋의 대가로 그것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고, 그리고 대기업에 다닐 때보다 조금의 더 흔들림으로 조금 더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바로 그 직전까지는 아이, 바로 그 후부터 어른이 되는 그런 순간은 없다. 모든 일에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완벽한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도 없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자기가 생각하던 어른의 모습에는 이르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다만, 사람의 인생은 언제나 흔들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흔들리지 말아야할 절대적인 한 두 가지를 찾아낸다면 바로 그 순간부터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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