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7일 월요일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 김동조를 읽고.


"인간이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체계적으로 정리된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가장 좋다. 그 대표적인 것이 경제학의 관점이다. 철학이나 종교의 관점과 달리 경제학적 관점은 당위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는다. 다른 말로 하면, 경제학은 사물의 '응당 그래야 하는 면'보다는 '현상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에 더 주목한다. 경제학적 관점에 익숙해지면 '어떤 사랑을 하는 것이 좋을까?' 라는 질문 대신 '이런 사랑을 하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8p, 머리말 중에서.

이 책은, 머리말에 나오는 말대로, 세상 거의 모든 것- 차별, 불평등, 정치, 성매매, 교육, 결혼, 직업, 성공 등- 에 대해 최대한 경제학적으로 바라보고 해설한 책이다. 경제학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함은, 크게 두 가지 로 해석하는 셈인데 첫 째는 수요 공급 곡선이고 둘째는 비용 편익 분석이다.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올라갈 것이요, 공급이 많으면 가격이 내려갈 것이며, 비용대비 편익이 크다면 할 만하고, 비용대비 편익이 적다면 매몰비용을 아까워하지 말고 과감히 관둬야한다. 이 간단한 원칙으로 세상을 풀어내니, 명쾌하다. 속이 다 후련하다. 내용이 조금 불편한 경우도 있지만, 다 이 원칙하에 설명을 하니 논리적으로는 일관되고, 지적인 쾌감마저 든다.
게다가 저자가 워낙 글빨이 좋으시다. 책 제목과 같은 Economics of almost everything(http://seoul.blogspot.kr/) 이라는 블로그도 운영하고 계신데, 가보면 역시 내공이 장난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문제는 수요-공급, 비용-편익이 절대적으로 올바른 전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비쌀수록 수요가 더 올라가는 명품 같은 베블렌 이펙트도 존재하며, 비용-편익이 사람마다 결코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의 현상은 경제적인 이유 외에 정치, 사회, 문화적인 다양한 변수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예로, 이 책에서는 대학 등록금이 늘어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1. 세계화로 한국의 대학이 학생들을 미국 명문 대학에 뺏기기 시작했다.
2. 한국 명문 대학도 미국 명문 대학에 고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교육 서비스의 질을 급격히 높였다.
3. 그 결과 등록금이 올라갔지만, 소비자들의 수요는 가격에 대해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대학은 등록금을 계속해서 올릴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이유도 있었겠지만, 등록금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될 수 있었던 정치적 배경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반면 저런 상황이라고 꼭 등록금이 이만큼이나 올라야 했던 건 아니다. 각 대학별로 쌓아둔 적립금 규모가 1000억단위다. 4000억이 넘는 사립대만도 이대 연대 홍대 3곳이라고 한다. 투명하지 않은 사학재단의 재정도 등록금 인상의 큰 원인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수요-공급, 비용-편익 세상에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못 쓴 책이라는 것은 아니다. 수요-공급, 비용-편익 분석을 안다고 누구나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세상을 경제학적 관점으로 철저히 바라보는 것도 경제학 법칙에 통달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는 이 책은 잘 쓴 책이다. 이 책 안의 논리만큼은 일관되고 명확하니까.

인간의 행동을 숫자로 개념화하여 명쾌하게 이해하는 데 경제학만큼 유용한 학문은 없는 듯하다. 하지만, 인간은 경제학으로 모두 설명되는 단순한 존재는 아닌듯하다. 항상 불합리한 면이 있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나타내곤 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것이 매력 아니겠는가. 그것이 아마 이 책의 이름이 모든 것의 경제학이 아닌,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인 이유인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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